새 쪽지
쪽지 플러스 구매
쪽지
전체 선택 삭제
  • 쪽지
  • 친구
  • 설정
로즈선물
  • 임의지정
  • 내 보유로즈
    0

젤리선물
  • 임의지정
  • 내 보유젤리
    0

하트선물
  • 임의지정
  • 내 보유하트
    0

메시지 상세
00:00

logo

방송국 스튜디오

지오클래식 즐겨찾기
since 2009-10-28
https://anmin10.inlive.co.kr/studio/list
http://anmin10.inlive.co.kr/live/listen.pls
막사 (LV.2) 소속회원 EXP 2,403
  • 1,000
  • 다음 레벨업까지 7,597exp 남음
  • 10,000

신청곡 / 사연

인라이브의 게시판 (커뮤니티 유저게시판/자료실, 방송국 게시판) 관리 지침
  • ■ 문명 충돌인가, 종교 갈등인가     영국인 고고학자 조지 스미스(George Smith 1840-1876)는 갑자기 책상에서 일어나 고함을 고래고래 지르면서 옷을 벗어던지기 시작했다. 너무도 기쁜 나머지 이렇게 미친 짓을 하지 않고서는 감정을 제어할 수 없었다. 몇 년 동안 밤낮없이 풀어오던 점토판 설형문자의 기록을 완벽하게 해석해낸 것이다.     그가 해석을 끝낸 점토판은 1872년 티그리스 강변의 한 왕궁터에서 출토된 것으로, 세상을 뒤집어놓을 만큼 충격적인 내용을 담고 있었다. 점토판에는 BC2000년 경에 기록된 길가메시 서사시(Gilgamesh Epoth)가 적혀 있었다. 길가메시는 BC2800년 경 고대 수메르의 우르크(Urk)시를 통치한 왕이었다. 그는 만년에 현자 우트나피시팀(Utnapishtim)을 찾아나섰다. 우트나피시팀은 태초의 홍수에서 살아남아 영생을 얻은 최초의 인간이었다.     길가메시가 우트나피시팀에게서 들은 대홍수 얘기는 이러했다. “신들은 교만해진 인간들을 멸하기로 결정했다. 그러나 우트나피시팀에게만 방주를 만들어 홍수에 대비하라고 말해주었다. 우트나피시팀은 목수들과 함께 7일 만에 배를 만들었다. 그는 방주에 가족과 온갖 짐승을 태웠다. 그러자 거대한 폭풍우가 일어났고 세상은 멸망했다. 홍수가 그치고 7일이 지난 후 우트나피시팀은 비둘기, 제비, 까마귀를 날려보내 물이 빠졌는지 확인했다. 까마귀가 방주로 돌아오지 않자 그는 물이 완전히 빠졌음을 알았다.”     점토판에서 확인된 길가메시 서사시의 주요 내용이다. 그런데 길가메시는 실존인물이고, 길가메시 서사시는 그의 생존 후 800년이 지난 BC 2000년경에 기록된 서사시다. 구약성서가 본격 작성되고 기록된 시기는 BC 6-5세기부터다. 그러니까 길가메시 서사시는 구약성서보다 최소한 1500년이나 앞선다.     그렇다면 길가메시 서사시와 노아의 방주와는 어떤 연관이 있을까. 그것은 바로 길가메시 서사시와 노아의 방주 이야기가 너무나 흡사하다는 점이다. 이 유사성은 무얼 의미하는 것일까. 고고학자들과 사가들은 이렇게 말하고 있다. 노아의 방주 얘기는 유대인들이 만들어낸 독창적인 얘기가 아니라, 메소포타미아 문명권의 여러 민족에게 구전된 ‘대홍수’ 얘기를 유대인들이 슬쩍 빌려서 자기들 얘기인 것처럼 꾸며 구약에 기록한 것이라고 말한다.   구약에 기록되기 1500년 이전에 이미 있었던 “죄지은 사람들을 물로 심판한다”는 메소포타미아 설화를 유대인들이 주인공만 우트나피시팀에서 노아로 바꿔서 구약에 옮겨놨다는 얘기다.     조지 스미스의 이 발견으로 19세기말 유럽사회와 기독교(카톨릭+개신교)는 커다란 충격과 함께 일대 위기를 맞았다. 구약에만 유일하게 존재해야할 ‘대홍수’ 심판이 이미 그보다 1500년 전 메소포타미아 지방에서 구전돼온 흔한 얘기였음이 기록으로 증명됐기 때문이다. 기독교에 대한 믿음과 유일신 사상에 큰 흠집이 생겼다. 노아의 방주 얘기는 길가메시 서사시의 복사판이었다.     이 발견 이후 기독교계와 유럽사회는 우물쭈물 사태를 못 본 척하며 넘어갔다. 그 이후 1·2차 세계대전이 터지면서 이 사건은 세인의 관심에서 멀어졌고, 더 이상 이 사실을 후속 연구하는 고고학자들이 나타나지 않았다.     이 길가메시 서시시에 관한 고고학적 발견을 아는 이들이 많지 않을 듯 하다. 특히 우리나라 개신교 교도들은 더욱 그러리라 생각된다. 설령 이런 사실을 알았더라도 부정했을 것이다. 그들이 금과옥조로 여기는 성서에 거짓이란 있을 수 없어서다.     그러나 이스라엘이 고대 메소포타미아 문명의 한 부분을 이루었고, 기독교는 이스라엘에서 잉태된 종교이므로 메소포타미아 대홍수 얘기를 빌려와서 구약에 담았으리라는 건 충분히 가능한 일이고, 실제 그 같은 일이 벌어졌음이 고고학적 발견으로 증명됐다.     AD 476년 서(西)로마가 멸망한 이후 유럽 문명을 떠받친 두 기둥은 히브리즘(Hebraism)과 헬레니즘(Hellenism)이다. 히브리즘은 야훼를 숭배하는 기독교를 말함이고, 헬레니즘은 인간적이고 합리적인 고대 그리스 문명 - 특히 BC 4세기 알렉산더 대왕의 사후 세계화한 그리스 문명 -을 뜻한다.   그리고 이 두 요소는 모두 오리엔트, 즉 동양에 그 기원을 두고 있다. BC 3200년 경 오리엔트 문명, 즉 메소포타미아 문명이 발상한 뒤 이 문명은 에게해의 미노아 문명으로 흘러들었고, 미노아 문명은 다시 그리스 문명을 꽃피우게 했다. 12-15 세기의 르네상스도 고대 그리스·로마 문명의 가치를 되찾아 재조명하자는 유럽의 개화운동이었다.     헬레니즘 역시 오리엔트 지방에서 꽃피워 아시아·유럽지역으로 확산돼 세계화한 그리스 문화였다. 그리고 헬레니즘은 동서양 문명·문화를 한 차원 더 승화시켜 연결한 가교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이에 따라 2000년 전부터 동서양은 서로 상대에게 의존해 상호보완하는 방식으로 발전해갔다. 종교, 역사, 문화, 철학 할 것 없이 거의 모든 학문과 가치가 그러했다.     기독교 역시 메소포타미아 문명에서 태어났고, 성경 이론의 상당 부분이 동양의 힌두이즘 및 불교와 그 유사성이 매우 가깝다고 한다. 어떤 종교든 그것이 글로벌한 내용을 갖추고 있다면 그 종교의 경전은 동서양의 모든 가치를 포용하고 있다고 봐야 한다. 결국 총론은 비슷하되 각론과 그 색깔이 다를 수 있다는 게 세계적인 종교들이 가진 공통점이다.     고로 어느 종교든 다른 종교를 서로가 존중하고 인정해야 한다. 이미 고찰했듯이 세계적인 종교는 모두가 동서양의 종교관과 철학, 가치를 골고루 포용하고 섭렵해 있기 때문이다.     인간사 어느 분야든 굴곡과 갈등이 있듯이, 종교 분야에도 갈등과 충돌이 있기 마련이다. 그러나 그런 것들은 서로가 서로를 받아들일 줄 아는 조화로움이 있을 때 해소되고 서로 발전할 수 있다.     오늘날 기독교가 특히 개신교가 오만한 태도로 타 종교를 핍박하거나 업수이 여기는 바람에 세계 곳곳에서 불행한 사태가 빈번히 일어난다. 뉴욕 트레이드센터를 항공 폭파시킨 9·11사건도 따지고 보면 오만한 기독교를 공공연히 지원하는 미국에 분노한 아랍권 무슬림들이 벌인 무력 저항운동의 결과다.   아메리카 인디언을 무참히 살육했던 아메리칸 크리스찬들에 영향받은 구미 기독교도들이 타 지역, 타 종교를 핍박하다 도처에서 저항에 직면하고 있다. 이란·이라크가 그러하고, 알 카에다로 대변되는 아프칸과 파키스탄 저항세력이 그러하다.     최근 서울 한복판에서도 개신교 신자들이 타종교를 업수이 여겨 핍박한 사건이 터졌다. ‘찬양인도자 학교’ 소속의 젊은 개신교도들이 지난 10월 24일 삼성동 소재 봉은사(奉恩寺) 대웅전에 들어가 이른바 ‘봉은사 땅밟기’라는 해괴한 개신교식 예배를 했다. 이를 동영상으로 본 세인들이 공분하고 있다. 이들은 예배하면서 “서울 한복판에 이렇게 크게 우상숭배하는 곳이 있다는 사실이 놀랍다. 이 땅은 회복될 것이며, 하나님은 그리고 우리는 승리할 것이다.”라고 주장했다.     이 무슨 망발인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 아마도 그들은 몇천 년 전 유대 땅에서 있었던 이스라엘식 통치방식을 그대로 따르는 게 아닌가 싶다. 그 당시 사방의 강국들에 둘러싸여 있던 이스라엘 지도층은 나라를 지키고 민족을 보전하기 위해서 종교적 가르침을 강조했다.     가르침의 핵심은 야훼 이외의 모든 것은 우상이니 절대 믿지 말라는 것이었다. 몇천 년 전 그것도 유대라는 작은 지역에서 분열을 막기 위해 내놓은 종교적 가르침을 지금 우리나라 일부 개신교도들이 그대로 따라하고 있다. 당시 상황에서 이스라엘이 생존하기 위해서는 유대민족의 일치단결이 최우선이었다. 그래서 나온 것이 타 종교를 절대 섬기지 말라는 가르침이었다. 당시 이스라엘 이외의 주변국들은 다신교 국가였다.     시대가 변하고 가치가 변했다. 몇 천년이 지나는 동안 모든 종교도 시대에 맞게 변했다. 불과 3백여년 전만 해도 갈릴레오가 지동설을 주장하다가 교회로부터 파문당해 화형에 처해질 뻔 했다. 당시 기독교 종교계에는 천동설이 만고불변의 진리였다. 과학 발전으로 이제는 누구도 천동설을 믿지 않는다. 종교계도 시대에 따라 변해야 한다. 인간은 물론 인간에 의해 창조된 가치나 신념들은 그 시대가 요구하는 바대로 따라 변한다. 이 것이 세상의 순리요 진리다.     오늘의 시대가 요구하는 제일의 핵심가치는 다양성과 호혜성이다. 어떤 사물이나 가치에 대해 무수히 많은 견해나 사고를 가질 수 있고, 그 사고가 존중받을 수 있는 게 다양성의 기본 이치다. 호혜성은 서로가 동등한 조건과 입장에서 대화하고 소통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 다양성과 호혜성이라는 측면에서 보면 ‘봉은사 땅밟기’를 한 사람들은 시대 흐름에 지극히 역행한 자들이다. 어째서 자기들이 믿는 종교는 하나님이 내린 종교고, 타인이 믿는 타 종교는 우상의 대상으로 배척돼야 하는지 설명이 되지 않는다.     사회가 발전하려면 특히 종교가 발전하려면 이 다양성과 호혜성의 원리를 깊이 깨달아야 한다. 이 원리를 부정하거나 소극적인 태도의 종교는 세계 종교가 될 자격이 없거나 교리가 부족한 종교다. 나만이 축복받은 자고, 내 종교만이 야훼의 종교라고 믿는 자들은 세상의 기본 원리조차 알지 못하는 무지랭이에 지나지 않는다. 무식해서 세상 돌아가는 이치를 모르고 혼자 찧고 까부는 그런 부류라는 얘기다. 세상은 아는 것만큼 보인다. 그러니 아무리 혼자 잘 낫다고 떠들어대도 그들은 세상 사람들의 조롱거리밖에 되지 않는다.     이들 무식장이의 땅밟기 행위를 굳이 따지자면 맹목적으로 좌충우돌하는 광신도들의 광적 행위일 뿐이다. 그런 행태를 종교적 갈등이라고 말하기에는 갈등이라는 용어 자체가 우스꽝스럽다. 그렇다고 그 행위를 동서양 문명의 충돌로 보기에는 그 용어가 더더욱 수치스럽다. 있다면 또라이들의 한바탕 패거리 행패뿐이다.     개신교가 진정으로 사랑의 종교로, 세계인의 종교로 발전하려면 내가 중요한 만큼 타인도 중요함을 행동으로 실천해야 한다. 아마 예수도 땅밟기 행동에는 손을 내저었을 것이다. 2010. 11. 4.

    16
    지그gigue(@gigue400)
    2010-11-07 08:52:36
신청곡
, - ...
사연

댓글 0

(0 / 1000자)


3

토마231

@toma231

운영 멤버 (11명)

  • 3
    • 국장
    • 토마231
  • 1
    • 부국장
    • q가름길p
  • 1
    • cj
    • -RedCloud-
  • 1
    • cj
    • morte
  • 1
    • cj
    • 콩알쭌
  • 9
    • 스탭
    • 그대
  • 1
    • 스탭
    • 사랑의수선화
  • 1
    • 스탭
    • 알프스하이디
  • 1
    • 스탭
    • 지수cc
  • 1
    • 스탭
    • 티없는연노랑
  • 1
    • 스탭
    • 프란치스꼬윤
  • 쪽지보내기
  • 로그방문

브라우저 크기를 조정해 주시거나
PC 환경에서 사용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