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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고삐 - 하스킬님에게 드리는 글 (다솜이 사랑님 으로부터 )

    1
    captain333(@captain333)
    2011-08-13 14:43:14
 
고 삐
 

1. 침묵
 
어머니는 치매가 오기 전, 수술했던 대장암이 전이되고 또 전이되어 간과 폐가 돌덩이로 변하고 있었어도 신음소리 한 번 내지 않으셨다. 의사인 나도 그저 겉모습만 보고 다행으로 여겼다. 하지만 그게 정말 다행스러운 일이었을까? 말문을 닫고 두 팔과 두 다리를 새우처럼 웅크리고 누워 있던 모습을 치매 때문이라든지, 결벽증 때문으로 생각했던 나. 왜 나는 이제야 깨닫는가? 평생토록 속으로 아픔을 삼키고 삼키던 어머니를. 자식들 중에 내가 가장 어머니를 잘 안다고 생각했다는 것이 우습다. 도대체 내가 어머니에 대해서 무엇을 알았단 말인가.
돌아가시기 몇 달 전 어머니는 내게 말씀하셨다.
“니 심뽀 고래 쓰면 안 된다. 내가 다 안다.”
“…”
“얼굴 봤으이 됐다. 고만 가거라.”
그 말씀 이후로 어머니는 입을 다무셨다. 갈 때마다 어머니의 꼭 다문 입술과 굵은 주름, 비장한 표정은 참 낯설었다.
“이제 갈란다. 내, 산에 갈란다. 붙잡지 마라.”
평생 한 번도 그런 식으로 말씀하신 적은 없었다. 꿈속에서도 나를 그리워했다는 어머니가 내게 그렇게 냉랭하실 수는 없다. 그러나 번번이 어머니의 표정에는 마치 그런 말을 삼키고 있는 듯 비장한 결기가 서려 있었다. 가슴이 저렸다.
어머니는 내게서 멀어져갔다. 난 버려진 자식 같았다. 세상에 오직 나밖에 모르는 어머니였으니, 어머니가 버린 것은 아들일 수도 있고 세상일 수도 있었다. 그게 너무 아팠다. 어머니의 한 생이 그 결기에 찬 표정 속에 화석화되어 가고 있었다.
사랑이란 무엇인가. 어머니와 나 사이에 일어난 모든 것도 사랑이라는 이름 아래서 일어난 일이었을 거다. 그 사랑 때문에 나는 아팠다. 그 사랑은 고삐처럼 나를 잡아맸다. 때로 가고 싶은 곳에 가지 못했고 하고 싶은 일을 하지 못했다. 사랑은 때때로 족쇄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허나 그것 외에 우리가 이생에서 무엇을 바랄 것인가.
 
2. 죽음의 기억
 
내가 초등학교 4학년 때, 당시 스무 살이었던 형이 죽었다. 그리고 채 일 년도 안 된 어느 날, 나는 식중독으로 온몸에 두드러기가 나서 피부를 다 벗겨내고 싶을 정도로 가렵고 배가 끊어질 듯 아프고 숨이 막혔다. 동네 병원으로 데려 갔으나 의사가 없었다. 하필 그날 의사는 대학병원 세미나에 갔단다. 어머니는 발을 동동 굴렀다.
“아이고 우짭니꺼? 전화해서 빨리 좀 오라꼬 하이소.”
난 더 이상 버틸 힘이 없었다. 아, 이렇게 죽는구나. 정신을 놓치고 말았다. 어느 순간 고통은 간데없고 모든 것이 편해졌다. 분홍빛 기운이 희붐하게 다가오더니 눈앞이 훤해졌다. 그때 난 내가 죽음의 세계로 들어섰다는 것을 즉각 알아차렸다. 죽는다는 거 별 거 아니네. 이렇게 편안한 걸…. 그때까지 난, 죽으면 땅속처럼 숨 막히는 답답한 세상으로 가는 것이라고 믿고 있었다. 그런데 막상 내가 도달한 그곳은 깜깜하고 답답한 어둠의 세계가 아니라 동트는 아침 같은 세상이었다. 아, 형도 죽을 때 이랬었겠구나. 그래, 여기가 천당이고 극락일 거야. 홀로였지만 두렵지 않았다. 혼몽 중에 어떤 기척을 느꼈다. 누군가 나를 데리러 온다는 느낌이었다. 누구일까, 천사일까, 선녀일까. 어쩐지 형이 나타날 것만 같았다. 형이 나를, 아름다운 음악과 함께 꽃과 새와 나비가 춤을 추는 곳으로 데리고 갈 것만 같았다. 바로 그 순간 어머니의 목소리가 아득한 데서 들려왔다.
“병국아, 병국아!”
나는, 어, 형이 아니고 왜 엄마지? 하면서 소리 나는 쪽을 향했다. 그러고 보니 내겐 육신이 없었다. 난 허공 어디쯤 떠 있는 듯도 했고 우주의 한 가운데를 유영하고 있는 듯도 했다. 그곳에서 분명 나는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었는데 그 누군가는 오지 않았고, 엄마가 저 아래 세상에서 나를 부르고 있었다. 굿판 같은 웅성거리는 소리도 들려왔다. 아, 엄마가 굿을 하나 보다. 형이 죽고 난 후에도 어머니는 여러 번 무당을 불러서 굿을 했다. 무당은 귀신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대나무 이파리로 내 몸을 쓸곤 했다. 그땐 참 무서웠다. 형의 귀신이라지만 귀신은 무서웠다.
나는 곧 나의 정체를 알아챘다. 내가 귀신이 되어 있었던 것이다. 이제 귀신은 하나도 무섭지 않은 존재였다. 그것은 바로 나였으니까. 엄마는 애절하게 나를 불렀다.
“아이고! 아가야, 어미가 잘못했다. 천지신명님, 지가 잘못했심더. 다 제 죕니더.”
엄마의 목소리는 점점 더 크게 더 안타깝게 들렸다.
“아이고 병국아, 눈 좀 떠 봐라.”
내 앞의 분홍빛 세상이 사라지면서 울고 있는 엄마의 얼굴이 보였다.
“엄마!”
그때 나에게 있어서는, 분홍빛 세상은 삶과 어둠의 경계였다. 내가 어머니의 애타는 목소리에 이끌린 것인지 아니면 식중독이 얼마큼 해독되어 살아난 것인지 알 수 없지만, 그 분홍빛 세계에 대한 경험은 아직도 잊을 수가 없다. 그건 기묘한 황홀이었다.
그 일을 겪은 얼마 후, 나는 어머니께 말씀드렸다.
“엄마, 죽은 세계가 아침 해 뜨듯 밝고 아름답대…. 태호 형도 그런 세상으로 갔을까?”
“야가 무신 소리를 해쌌노?”
이후 어머니의 공포는 극에 달했다. 이제 어머니의 기도는 잃어버린 딸과 두 아들에 대한 불안한 자책과 집착으로 서성일 겨를이 없었다. 대부분 나를 위한 기도로 집약되기 시작했다. 귀신도 헷갈리게 아들에게 다섯 개의 이름을 지어주고, 이름 있는 절마다 찾아다녔다. 절마다 올린 내 이름은 각기 달랐다. 급기야는 이모할머니에게 나를 팔았다. 물론 어떤 점쟁이의 말에 따라 주술적인 절차를 밟은 것에 불과했지만 이때부터 내겐 어머니가 둘이 된 것이다. ―양어머니가 된 이모할머니는 내가 대학 졸업할 때까지 나를 위하여 제단에 촛불을 밝히고 향을 피웠다.―
그리고 나는 그때부터 삶과 죽음을 꿈처럼 받아들이기 시작했던 것 같다. 그 나이에 삶과 죽음이 꿈같고 그림자 같았다고? 뻥이지? 누군가는 내 말에 딴지를 걸 수도 있을 것이다. 맞다. 그건 뻥이다! 그런 관념의 세계는, 낮과 밤처럼 경계가 없어서 칼로 베듯 명쾌하게 바로 그 순간부터 확호해졌다고 단언할 수는 없는 것이니까. 분명 오랜 시간에 걸쳐 서서히 내 마음 속에 스며들었을 것이다.
내가 정작 말하고 싶은 것은 사실 그날의 그 짧고 혼몽한 경험에 대해서가 아니다. 어머니의 기도, 그 태생적인 모성의 기도가 바로 내 생명에 직결되어 있다는 듯한 어머니의 믿음이, 나는 고맙기도 했지만 엄청난 부담이었다는 것, 차마 자식으로서 말해서는 안 되는 바로 그 마음의 불효를 고백하고 싶은 것이다.
 
3. 출가의 유혹
 
중학교 이학년 어느 날이었다. 어머니는 부엌에서 저녁준비를 하고 있었고 나는 부엌마루에 앉아 불 지핀 아궁이를 바라보고 있었다. 아궁이에선 여느 때와 다름없이 관솔과 장작이 활활 타고 있었다. 하지만 그날따라 나에게 그 불길은 예사롭지 않아 보였다. 아궁이 속에 갇혀 있는 불보다 아궁이 밖으로 삐져나와 너울대는 불길에 눈길이 더 갔고, 왠지 그 모습은 어디론가 달아나고자 하나 더 이상 달아나지 못하는 고삐에 매인 짐승의 필사적인 저항의 몸짓처럼 다가왔기 때문이다. 난 그 광경을 하염없이 바라보고 있었다. 아니 필사적으로 탈출을 시도하는 그 무척추 동물의 허우적거림에 내가 전이되어 있었던 것 같다. 내 의식도 혼몽하게 그 불길 속으로 빠져들어 허우적댔다. 불길은 지친 듯 시나브로 잦아들더니 이윽고 잉걸불만 남아서 이글거렸다. 어머니는 잉걸불 위에 된장 뚝배기를 얹었다. 된장 끓는 냄새와 밥이 뜸 드는 냄새가 집안에 퍼지기 시작했고 동시에 내 뱃속이 꿈틀댔다.
국자로 국물을 떠서 마지막 간을 보던 어머니가 고개를 끄덕이며 빙긋 웃었다.
“니도 한번 묵어 바라.”
침이 꼴딱꼴딱 넘어갔다. 하지만 나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안 돼. 어머니께 이야기해야만 해. 속으로 다짐하고 또 다짐했다. 여느 때였다면 어머니 곁에서 같이 맛을 보고 짜다느니 싱겁다느니 맛있다느니 품평하면서 뜸이 다 들지 않은 밥을 조금 덜어내서 찌개로 문대가며 한 그릇 뚝딱해치웠을 거다. 하지만 그날은 아니었다. 배고픔을 견뎌야 했다. 딴은 의식적으로라도 육체의 허기보다 정신의 허기를 더 우위에 두고 싶었던 것이다.
“와, 무신 일 있나?”
어머니는 별스럽다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나는 되도록 어른스럽고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
“어무이예. 지는 인자 산에 갈랍니더.”
“해도 다 졌는데 산에는 머 할라꼬?”
“그냥 산에 간다는 기 아이라 중이 될란다꼬예.”
“중 돼서 머 할 낀데?”
마치 어느 집 강생이(강아지)가 짖고 있냐는 듯 무심한 어머니의 대꾸에 나는 당황했다. 어쩔 수 없었다. 내 결심을 조금 더 비장하게 알려야 했다.
 
어머니는 틈만 나면 절에 가 기도를 했고 집에서도 날마다 독경을 했다. 유년의 나에게 어머니의 그런 절절한 신행생활은 답답하면서도 기이한 공포를 몰고 왔다. 그것은 하나 남은 아들에게 언제 들이닥칠지 모르는 죽음과의 처절한 사투였을 것이다. 허나 나는 그렇게 구체적이고 깊이 있게 어머니를 이해하기엔 너무 어렸다. 다만 어머니를 따라 절에 다닐 때마다 어머니의 간절한 기원을, 저 불안과 두려움을 피하고 싶었고 그러다가 언제부터 꼭 내가 해결해 드리고 싶어졌다. 나는 어째서 누구는 일찍 죽고 누구는 백발이 되도록 오래 사는지 그 근원적인 문제에 대한 해답을 구해보고 싶은 욕망으로 간절했다. 그걸 욕망이라고 하는 것이 다소 어폐가 있다면 소망이라고 해두자. 나에게 서서히 자리 잡아 가고 있던 그 소망은, 간절하다는 차원에서 본다면 어머니의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죽는다는 기 먼가 알고 싶어서예.”
“중 된다꼬 그런 걸 다 아나?”
퉁명스런 어머니의 대답은 의외로 단순명료했고 나는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하고 얼굴을 붉혔다.
“절밥이 그리 쉬운 줄 아나? 되고 된 기 절밥이다.”
 
나는 어려서 할아버지께 천자문을 배웠다. 덕분에 초등학교에 들어가기 전부터 국한문 혼용체의 신문을 읽을 수 있었다. 그래서였을까. 조금 조숙했던 것 같다. 유년의 시간을 건너오면서 아이들과 그런대로 잘 어울리고 개구쟁이로 뒹굴기도 했지만, 때때로 남몰래 엉뚱한 생각에 몰두하는 시간이 많았다. 나는 이 세상을 일컬어 고해라고 한다는 것을 아주 일찍 알아들었고 그게 어린 시절 나의 화두였다면 화두였을 것이다. 거기에 영향을 미친 것은 아마도 어머니가 입버릇처럼 말씀하시던 ‘전생에 내가 무신 죄를 지어서…’라는 한탄이었을 것이고, 할머니와 친척 할머니가 외우던 경(?)이었을 것이다. 할머니의 경에는 이런 말이 있었다.
“충아 충아 백년 충아 금강산에 돛대 달고 생지마다 배를 띄워 조부조상 다 모시고…”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은 죄를 지어서 온 곳이고, 백년 버러지가 사는 생지옥 같은 곳이라고 하는 어른들을 이해할 수 없었다. 왜, 우리가 버러지며 우리가 사는 곳이 지옥인지 정말 궁금했다. 아마 어느 때쯤 부처가 생로병사를 해결했다는 말도 주워들었던 것 같다. 부처가 깨쳤다는 세상이 어떤 세상인지 한번 보고 싶었다.
 
그날 밤 나는 야반도주를 꿈꿨다. 하지만 실행하지는 못했다. 그날 저녁을 먹었는지 찌개 맛이 어땠는지 아무리 생각해도 기억나지 않는다. 기억나는 것은 말없이 한쪽 팔을 괴고 모로 누워 있는 어머니의 모습을 하염없이 지켜본 것뿐이다. 그 모습은 형이 죽었을 때와는 달랐다. 죽은 아들을 화장하고 돌아온 어머니는 연신 가슴을 치면서 ‘아흐흥’ 괴로운 신음을 토했었다. 하지만 그날의 어머니에게서는 숨소리조차 들리지 않았다. 한숨을 삼키고 또 삼키셨던 것일까.
‘중이 될라몬 내가 되야지 니가 무슨… 니까짓 기 무신 한이 있어서…’
숨 막히는 고요가 무언의 독백처럼 그렇게 방안을 맴돌았고, 나는 그 침묵의 무게에 짓눌려 질식할 듯 서러움에 북받쳤다. 울지도 못하고 자리를 뜨지도 못한 채 나는 어머니께 무언의 항복을 하고 말았다. 열다섯 살 소년의 결심은 더 이상 꿈틀거릴 수 없었다.
 
4. 거짓말
 
지난여름, 어머니는 내게 이상한 부탁을 했다.
“이보래, 니 내캉 대학병원 가자.”
내게 눈짓을 하면서 둘이 살짝 다녀오자는 거였다. 하지만 여동생은 어머니가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한다면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어머니는 애타게 나를 독촉했다.
“느거 아부지가 거기서 돌아갔다 아이가. 그런데 지금 내 만날라꼬 무덤에서 나와서 거기서 기다린다.”
섬뜩했다. 아버지가 기다리신다니? 어머니는 재작년 추석 전날에도 아버지 오시는데 왜 불을 켜지 않느냐고 다그치셨다. 이제 어머니가 가실 때가 되었나? 난 망연자실 어머니를 바라보았고 여동생은 잘라 말했다.
“어무이예, 아부지 돌아가신 지 30년이 다 되어가는데 무신 아버지가 엄마 보러 왔다캅니까?”
“그기 아이고 느거 이숙 아버지가 지관 아이가? 내가 그 양반한테 부탁했더니, 데꼬왔다꼬 연락이 왔다.”
“그 할아버지도 진즉 돌아가셨는데 무슨 말입니까?”
“아이고 야들아, 내가 느거한테 거짓말하것나?”
난 결국 어머니께 거짓말을 했다.
그날 우리는 가족끼리 식사를 하기로 했는데 어머니는 대학병원에 먼저 안 가면 식당에도 가지 않겠다고 완강하셨다. 난 어머니를 부축해 차에 모시면서 말했다.
“알았어요. 가시지요.”
그리고 곧장 식당으로 차를 몰았다. 식당 앞에서 어머니는 의심쩍게 나를 올려다보더니 주저앉으려고 몸을 부렸다.
“니가 내게 거짓말을 했나? 병원부터 간다꼬 하지 않았나?”
“어무이, 밥 무꼬 가면 될 꺼 아입니꺼?”
어머니는 한 술도 뜨지 않으셨다. 가족들은 우울한 가운데 저녁을 먹는 둥 마는 둥 자리에서 일어났다. 동생이 어머니를 부축하면서 말했다.
“어무이예, 다음에 가입시더.”
어머니는 쓸쓸한 표정으로 차에 올랐다. 내 인사에 한마디 대꾸도 않고 눈을 감으신 어머니를 뒤로 하고 나는 돌아오는 길을 서둘러야만 했다.
나는 참 바보였다. 누가 뭐라고 하던 어머니의 그토록 간절한 청을 외면하는 게 아니었다. 그래서 결국 니 심뽀 내 다 안다는 말을 듣고야 말았다. 다시는 나를 쳐다보지 않으셨다. 그 후 어머니의 침묵의 항변은 무척이나 길었고 답답했다. 입술을 꼭 다물고 뭔가 결심한 듯 줄곧 비장한 표정을 짓고 계시더니, 그 표정 그대로 돌아가셨다.
“가거라. 얼굴 봤으니 됐다.”
그게 어머니가 이승에서 마지막으로 내게 하신 말씀이었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것은, 2011년 1월 27일. 양력으로는 내 생일이며 음력으로는 할머니가 돌아가신 날이다. 어머니가 운명하신 바로 그 시각에 난 꿈을 꾸었다. 돌아가신 지 48년이나 된 할머니가 처음으로 꿈에 나타나셨다. 할머니는 생전의 모습 그대로였는데 아무 말 없이 나를 쳐다보셨다. 바로 그 순간 나는 전화 벨 소리에 눈을 떴고 여동생의 전화를 받았다. 어머니가 돌아가셨다는 것이었다.
 
염습사가 어머니의 굳게 다문 입술에 노잣돈을 먹인다. 나는 “어머니! 어머니!” 불러보았지만 어머니는 아무 반응이 없으시다. 내가 아주 오래 전 어머니의 부르심에 눈을 떴듯이, 지금의 내 외침에 어머니가 눈을 뜨실 수는 없는 것인가. 아니다. 그래선 안 된다. 난 그것을 바라지 않았다. 이제 어머니가 밝고 고통 없는 곳에서 편안히 쉬시길 진심으로 빌었다.
어머니는 진정 내 자유를 억압하는 고삐였을까. 혹시 나의 의지박약함을 은폐하려는 방패로 어머니를 내세운 것은 아닐까. 그것은 어쩔 수 없는 인간의 숙명. 우리가 누군가에게 책임을 전가하고 원망과 미움에 휩싸이는 것은 자기 삶의 주인이 되지 못하는 나약함 때문이다. 어머니가 나의 고삐였다면 나 또한 어머니의 고삐였으리라. 우리가 이 고해의 바다를 건널 때는 서로가 서로에게 고삐가 되어주어야 한다. 별들이 제 궤도를 지키는 것은 그 인력의 작용이듯이.
어머니 영전에 삼가 고한다. 부디 다시는 돌아오지 마시라! 부디 다시는 고삐에 매이지 마시라!
 
 
다솜님 컴에 문게가있는지 글 올리심에 고생이시기에 제가 대신 올려드렸습니다.
더운날 건강들 하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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